영화 감상만을 적으려니 좀 뻘쭘해서 이러저러한 감상들이 더 들어가게 됐다. 그냥 리뷰 공간이 돼 가고 있네, ㅋㅋㅋ
by hi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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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 꼭 성공하고 말리라!
   

이 녀석들을 얼마 전부터 계속 꼼지락대고 있다.
한 오십 페이지쯤 읽다가 잠시 쉬고, 또 다시 읽고 이런 식이다.
그러다 전에 중간 중간 필요한 부분만 읽었던


이 녀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로 했다.
빨리 이 녀석을 끝내고
나머지 세 녀석들도 후딱 끝내고 말리라!!!
아, 기쁘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by hihi | 2009/06/24 13:23 | 대략 | 트랙백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살려내는 힘!



글을 조금이라도 써 보면
참 애매한 분량이 있음을 안다.
더구나 한 인물의 이야기를 원고지 10매 내외에서 한다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백과사전을 바탕으로 정리한다면야 뭐가 어렵겠냐만
서경식 선생이 이 책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하듯이
인물을 찾고
그 인물의 포커스를 잡고
중요한 말과 평을 덧붙여서
그렇게 짧은 분량 안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인물에 대해 많은 조사와 애정을 쏟아붓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참으로 존경스러운 서경식 선생님
참으로 다시 보게 된 책 속의 초상들...
난 한참 멀었다.

by hihi | 2009/06/24 13:07 | 대략 | 트랙백
<악인> 21세기 세태풍속 실존윤리 딜레마


그간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 언젠가는 꼭 보리라 했으나 참 늦었다.
<퍼레이드>도 좀 보다가 말았는데
<악인> 역시 앞부분은 좀 의외로 심심했다.
다분히 세태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이 이 소설을 그렇게 칭찬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1/3쯤 지나가면서
점차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과연 그 여자는 왜 그랬을까? 그게 잘못일까?
과연 저 남자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과연 저 여자는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
과연 그 남자는 어떻게 응징해야 하는가?
<악인>은 그저 묘사하고 묘사할 뿐이다.
그닥  새롭지 않은 캐릭터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인물,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끈질기게 마음을 괴롭히고, 고민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누구의 잘못인가?
왜 이렇게 됐을까?
<악인>, 꽁꽁이도 꼭 한번 읽어 보라고 해야겠다. 
by hihi | 2009/06/24 13:06 | 대략 | 트랙백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캐릭터 추리물의 전형!


워낙 과학, 수학, 의학 쪽 스릴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좀 특별했다.
사실 추리소설로서는, 마지막 동기 설정도 약했고
플롯도 치밀한 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하지만, 읽는 내낸 사람을 빨아들였던 건
인물 묘사 때문이었다.
특히, 주인공 두 캐릭터는 압권이었다.
다음 권을 보게 만드는 힘은 캐릭터다.
요즘 들어 일본 소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언가 드라마, 영상화를 염두에 두었거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캐릭터화돼 있고
장면과 묘사가 아기자기하다는 뜻이다.
어쨌든 꽤 흥미로운 의학 캐릭터 만화경 추리 소설이었다!
by hihi | 2009/06/24 12:27 | 대략 | 트랙백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얼굴> 대한민국은 자유의 얼굴을 한 싸이코패스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요즘 <남자 이야기>라는 시청률 꽝의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재밌는 게 너무 티나게 지금 정권을 타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싸이코패스 재벌(김강우)은
'나는 우리나라에서 500만명만 남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이야기하고
'나머지 4천500만은 어쩌고?'라는 질문에
'글쎄, 결국 모든 건 500만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 아닐까?'
'다들 그 500만에 들기 위해 안달하지 않을까? 당신은 아니야?'
라는 식의 대답을 한다.

이 싸이코패스가 꿈꾸고 있는 모로코, 혹은 두바이 같은 경제특구의 이름은
바로 '명도시'이다.
그리고 그 명도시 개발을 위해 세입자들을 몰아내는 모습은
'용산 철거 참사'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이 드라마가 무섭도록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도, 경찰도, 그 무엇도
그저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점이다.
돈이 정치가를 내세우고
공권력이 돈의 눈치를 보고
언론은 그저 편의에 따라 쓰는 도구인 세상.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가 생각났다.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돈을 모으는 법보다는
당연히 돈을 굴리고, 자신을 관리하고, 남을 올라서는 법을 배우고
88만원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청년기를 통째로 바치고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결국은 명퇴하여 치킨집을 차려
수십만의 또 다른 치킨집 사장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

문제는 이 신자유주의 사회가
그저 경제적 곤란함과 양극화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바꾸어 버린다는 데 있다.
그때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내리는 정언명령이 바로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이다.
너무도 무시무시한 사회이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를 외면하거나 그러고 싶어한다.
나는 아니다.
나는 탈락의 공포, 예외가 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는 몇몇 소수의 이야기일 뿐
노력하면 다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가 아니다.
강남 부자는 3대가 가고
돈이 돈을 낳고
돈이 계급을 낳고
계급이 계급을 낳고
그들끼리 모여서 나머지는 저 멀리 어느 곳으로 쫓아 버리고
따라올 테면 따라오든가 말든가
그렇게 내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불균등한 사회에서
그것을 깨고, 더 힘든 사람을 돌보기보다는
오로지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는 쪽으로만 생각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가치였던 '자유'가
이 시대에 신자유주의라는 싸이코패스에 의해
살짝 얼굴을 가린 채 다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자유의 역습이다.

88만원의 현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88만원보다 더 벌기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죽도록 뛰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정언명령과
이를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드는
이 공고한 체제이다.

이 책 속의 한 소제목처럼
'탈락한 자에게는 쓸쓸한 묘비명조차 없는'
그런 사회이다.

더 이상 인간을 인간이게 놔두지 않는 사회
요즘 들어 자꾸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또 다른 자유를, 또 다른 대안을
쉬지 않고 생각하고 꿈 꾸고 일궈야 한다.
by hihi | 2009/05/25 17:25 | 대략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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