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우리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다 대략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노동자학교' 부천실업고등학교. 매달 발행하는 네 장짜리 신문 '우리들 한무릎터'에 실린 '내 꿈은 우리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김진호 선생님 글. 여기 계신 분들은 항상 나를 부끄럽게, 돌아보게 만든다.(페북에 싣기는 좀 길어 어쩔 수 없이 이글루 링크로...)


내가 우리 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작년이 개교 10주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학교 건물에 붙어 있던 10주년 기념 동판을 보았다. 학교의 졸업생들과 학교를 거쳐 간 선생님들의 이름, 학교를 후원해 주시는 후원인들의 이름이 한자 한자 빼곡히 새겨져 있는 동판(이 공사 저 공사를 하면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지만...)을 보면서 “언젠가 내 이름도 저 동판에 쓰여지겠지?” 라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벌써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학교에 들어올 때 쓴 자기소개서에 이곳 부천실업고에서 내 귀밑에 하얀 눈꽃이 필 때까지 있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썼었는데 얼마먹지 않은 나이지만 벌써 내 머리에 흰 꽃이 무성하게 자란 모습을 보니 쓴 웃음이 나기도 한다.  
10년 동안 훈장질을 하면서 참 눈물 나게 힘들었지만 즐거운 경험을 많이도 한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의 10년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인간에 대한 고민”이다. 이것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참 다양한 인간들이 살아가고는 있는데...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이라고 하는 나라, 이젠 선진국으로 간다고 하는 나라에서 난 정말 정말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 10년이기에 글 쓰는 지금도 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첫 해에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몇 번이나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심한 아이들의 생활모습이나 가정환경을 보면서 ‘아 이런 상황에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리고 그런 것을 보듬어 주어야만 할 사회가 이렇게 무심하다니’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 보았다.  
내 꿈은 우리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땅에 이런 소외받고 무시당하는 인간이 없어서 그런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말은 좋아서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고 자신이 노력하면 성취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을 하지만.... 그건 가진 자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소한 그것은 그래도 좀 먹고 사는데 별로 걱정 없는 이들의 이야기 인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은데...   
가난은 대물림 된다. 특히나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는 가난의 재생산이 지속되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끝이 없이 밑으로 밑으로만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학교의 교육 목표는, 아니 내가 생각하는 목표는 학교를 나와서 아니 중도에 포기 하더라도 이 땅의 올바른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참 멋진 말 같지만 우리 아이들이 그저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힘과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말은 참 말이 좋은 것이지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계급이 있다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인식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가장 밑바닥을 치고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그 낮은 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는 당당함과 당참이 있었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10년 동안의 내 훈장질이 아이들에게 작으나마 그런 힘을 길러 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과 우리 학교의 앞으로의 10년 20년의 교육이 또한 이 땅의 힘없고 소외 받은 이들이 서로 어깨를 보듬어 주며 함께 그런 당당함과 당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작은 텃밭이기를 기대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래도 내 꿈은 우리 학교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일이라도 이 세상이 확 바뀌어서 우리 아이들이 소외 받지 않고 함께 배우고 서로 나누며 같이 이루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면 내일 당장 백수가 되어도 난 정말 덩실덩실 춤추며 살아갈 수 있을텐데....  

73세할머니생신에 드리는 예원이의 카드 대략



이 녀석들 꼭 성공하고 말리라! 대략

   

이 녀석들을 얼마 전부터 계속 꼼지락대고 있다.
한 오십 페이지쯤 읽다가 잠시 쉬고, 또 다시 읽고 이런 식이다.
그러다 전에 중간 중간 필요한 부분만 읽었던


이 녀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기로 했다.
빨리 이 녀석을 끝내고
나머지 세 녀석들도 후딱 끝내고 말리라!!!
아, 기쁘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살려내는 힘! 대략



글을 조금이라도 써 보면
참 애매한 분량이 있음을 안다.
더구나 한 인물의 이야기를 원고지 10매 내외에서 한다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백과사전을 바탕으로 정리한다면야 뭐가 어렵겠냐만
서경식 선생이 이 책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하듯이
인물을 찾고
그 인물의 포커스를 잡고
중요한 말과 평을 덧붙여서
그렇게 짧은 분량 안에
꼭 하고 싶은 말을 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인물에 대해 많은 조사와 애정을 쏟아붓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참으로 존경스러운 서경식 선생님
참으로 다시 보게 된 책 속의 초상들...
난 한참 멀었다.


<악인> 21세기 세태풍속 실존윤리 딜레마 대략



그간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 언젠가는 꼭 보리라 했으나 참 늦었다.
<퍼레이드>도 좀 보다가 말았는데
<악인> 역시 앞부분은 좀 의외로 심심했다.
다분히 세태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이 이 소설을 그렇게 칭찬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1/3쯤 지나가면서
점차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과연 그 여자는 왜 그랬을까? 그게 잘못일까?
과연 저 남자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과연 저 여자는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앞으로 잘 살 수 있을까?
과연 그 남자는 어떻게 응징해야 하는가?
<악인>은 그저 묘사하고 묘사할 뿐이다.
그닥  새롭지 않은 캐릭터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인물,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끈질기게 마음을 괴롭히고, 고민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누구의 잘못인가?
왜 이렇게 됐을까?
<악인>, 꽁꽁이도 꼭 한번 읽어 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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